▲ 해미국제성지에서 안내 중인 한광석(마리요셉) 신부.

 

[행사&화제] 해미국제성지 도보순례길, 2019년부터 여숫골 생매장 유해 발굴 이장을 기념해 4월 첫 번째 토요일로 정례화

 

지친 영혼을 치료하고 영감을 주는 산티아고 순례길이 서양에 있다면 동양에는 해미국제성지 순례길이 있다.

오는 4월6일(토) 오전 8시30분부터 한서대학교 앞에서 행진을 시작해 해미읍성까지 5km를 함께 걷는 행사가 열려 주목받고 있다.

덕산에서 한티 고개를 넘어 해미로 오는 천주교도 압송길은 1976년 8월에 대한가톨릭학생전국협의회 주최로 제1회 전국 성지순례가 내포 지역에서 거행되면서부터 도보순례 길로 거듭났다. 구간은 솔뫼-합덕-덕산-해미로 이어지는 65㎞의 순례길로 5일 혹은 6일간의 장정이었다. 이 순례는 해마다 확대되어 내포 천주교 순례길의 중심축이 되고 성지순례 문화의 전형으로 자리 잡았다.

2015년부터 매년 서산지구행사로 거행되어 온 한티 고개 도보순례는 2019년부터 여숫골 생매장 유해 발굴 이장을 기념해 4월 첫 번째 토요일로 정례화 되었다.

2014년 124위 한국 순교자들의 시복식 거행과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 개최를 계기로 방한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솔뫼성지와 해미성지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솔뫼성지와 해미순교성지는 신자가 아닌 사람들과 외국인들도 찾는 장소가 되고 솔뫼에서 해미로 이어지는 순례길은 더욱더 대중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20년 11월 29일 교황청의 선포로 해미순교성지가 국제성지로 거듭났다. 그리고 그 순례지 중에 ‘한티 고개’가 포함되면서 한티고개 순례길도 국제순례길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러자 대전교구는 2021년 3월 4일 공세리성당에서 내포 지역 여러 성지를 거쳐 해미국제성지에 이르는 ‘해미국제성지 순례길(7개의 길)’과 ‘해미국제성지와 연계할 내포 순례길(9개의 길)’을 발표했다. 이로써 내포 지역의 순례길은 모두 해미로 향하는 해미국제성지 순례길로 거듭났다.

한편, 조선 후기 해미 현감은 영장 겸 토포사를 겸하여 해미현에 대한 행정권뿐만 아니라 해미현을 포함한 서산·태안·당진·면천·덕산·예산·평택·아산·온양·신창·대흥·결성 등 13개 고을에 대한 경찰·사법·군사권까지도 행사했다.

따라서 해미현의 포졸들은 이들 13개 군현에 나가서 죄인을 체포하여 해미 관아로 압송해 왔다. 그리고 심문 과정에서 관련 죄인이 드러나면, 해미 포졸들은 다른 영장이 관장하는 고을에 가서도 죄인을 체포하여 압송해왔다.

이렇게 내포지역에서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된 죄인들 가운데에는 천주교도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대부분은 덕산을 거쳐서 한티고개를 넘어 해미로 끌려왔다. 내포지역에서 덕산 한티고개를 넘어 해미로 오는 옛길은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1791년 신해박해부터 1868년 무진박해까지 내포지역에서 체포되어 해미로 잡혀 온 천주교도들은 해미읍성 안의 옥에 갇힌 뒤, 차례로 영장이 집무하는 동헌 앞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모진 고문에도 배교하지 않고 신앙을 굳게 증거한 그들은 사형선고를 받은 뒤, 곧 천국에 올라가 하느님을 뵐 수 있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옥이나 서문 밖에서 교수형을 당하거나, 해미천 건너 여숫골(숲정이)에서 생매장당하거나 참수형 당해 순교했다.

그들의 시신은 대부분 여숫골에 버려지고 매장되었다. 이러한 연유로 1799년부터 1668년까지 해미에서 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이런 해미지역 천주교사에 주목한 서산 가재(상홍리) 본당의 바로(Barraux, 范) 신부와 신자들은 병인박해 당시 목격 증인과 이후의 전문 증인을 다수 찾아내 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1935년 4월 1일 해미 여숫골 생매장터를 발굴해 18명 이상의 유해와 십자가상 등 성물을 수습했다.

그런 다음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대곡리 공소에 가서 1박 후 4월 2일 유해 상여를 메고 만장을 앞세워 해미읍성을 거쳐 가재 본당 뒷산에 안장했다. 이후 해미 순교자들에 대한 현양은 이 순교자 묘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1956년부터 해미읍성과 그 주변 일대 순교 터에 관심을 두게 되고, 1973년부터 생매장터에 대한 성역화를 추진하여 1975년에 ‘해미 순교탑’을 건립했다. 해미 순교 터에 대한 성역화는 1985년에 해미 본당이 설립되면서 가속화되어, 1994년에 해미 순교자들의 유해가 원래 자리인 해미 여숫골로 이장되었다. 이어 2001년에 해미 본당에서 해미성지가 분리되고, 2003년 여숫골에 지금의 성전이 완공되면서 해미성지의 조성은 일단락되었다.

전국지역신문협회 충남공동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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